책 리뷰

[일인칭 단수] 나는 진짜 나인가?

책돌이입니당 2023. 4.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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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안녕하세요. 오늘의 도서는 '일인칭 단수'입니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상실의 시대를 대학 시절에 읽어보았습니다.
참고로 작가는 상실의 시대라는 한국판 제목을 불편해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 수피 문학사상사와 민원사에서 각각 나오고 있습니다.
같은 책이 다른 제목으로 나오고 있는 중이죠.
이번에 새로 나온 1인칭 단수를 읽어보았습니다.

일단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사소설이라는 것 그렇기에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 몽환적이면서도 기묘한 이야기 느낌이 난다는 것입니다.
총 8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으며 오늘 중점적으로 다루는 단편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1인칭 단수입니다.

제가 하르키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소설 자체만을 놓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평소 슈트를 입을 기회가 없는 나는 가끔 슈트를 꺼내 입는다고 합니다.
옷장을 열고 어떤 옷이 입는지 점검하다가 사놓고 거의 걸쳐보지 않은 슈트 세탁소 비닐에 쌓인 셔츠 거의 매보지 않은 넥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구쳐서 시험 삼아 말이죠.
물론 누군가 본다면 설명하기 애매해 집에 혼자 있을 때 가끔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내는 중국 음식을 먹으러 나갔고 나는 중국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어 집에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미스터리 소설을 읽었지만 왠지 정신이 산란해 집중이 잘 안 됐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슈트를 입어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입은 슈트에 나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깨름직하다고 느낍니다.

뭔가 자기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람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남몰래 여장하는 남자들이 느끼는 느낌 비슷한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뭐 이런 날도 있지 하면서 슈트를 입은 김에 거리로 나갔습니다.
초저녁에 자주 다니지 않던 바에서 보드카 김렛을 시키고 조명에 밝은 자리에 앉아 소설을 읽었습니다.

책 읽기 좋은 환경이지만 마찬가지로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카운터 건너편 선반 뒷면 벽에 거울을 통해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 슈트를 입은 자기 자신이 볼수록 나 자신이 아니라 처음 보는 다른 누군가라고 느꼈습니다.
그럼 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합니다.
그리고 인생에서의 여러 분기점을 생각합니다.
알게 모르게 어느 한 쪽을 선택했었고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 있다고 말이죠.

그리고 만약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는 여기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느끼는 이질감 때문에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누구일까를 계속해서 묻습니다.
그러다 책을 덮고 심호흡을 합니다. 문득 발견한 한 여성을 보게 됩니다.
신 안팎인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보드카 김릿을 시키고 다시 소설을 읽습니다.

소설을 다 읽어가지만 이야기가 재밌어질 조짐이 보이지 않을 무렵 사람이 붐비기 시작하면서 멀리서 봤던 그 여성이 자기 옆자리까지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여성이 나에게 말을 겁니다.
그리고 그러고 있으면 본인이 멋있는 줄 아냐고 시비를 겁니다.
적대감을 느낀 나는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해서 제가 아는 분인가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비아냥거리면서 어떻게 날 모르냐는 식의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멋진 슈트라고 하면서도 당신한테는 안 어울린다 꼭 빌린 옷 같다고 말해줍니다.
옷에 대해 잘 아시네요라고 답해주자 당연한 거 아니냐며 무안을 줍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으며 패션계에 아는 사람을 떠올려봐도 남자들만 알지 여성을 알았던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난 당신 친구의 친구라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3년 전 어느 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 보라고 합니다.
지독한 짓 고약한 짓을 그리고 부끄러운 줄 알아요라고 말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황급히 빨을 나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물가의 기억도 없지만

실제의 내가 아닌 내가 3년 전 어느 물가에서 저지른 고약한 짓의 내용이 밝혀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발을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쏟아낸 말은 소설 그대로의 말을 빌리자면 상징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부분적으로 선명하지만 동시에 초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신기하게 화는 나지 않았고 혼란스러움과 난처함의 파도가 그 외의 감정 혹은 논리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떠나보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낯설어진 거리를 느끼면서 부끄러운 줄 알아요 라는 여자의 말을 되새기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1인칭 단수입니다.
나라는 주인공은 나를 시점으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바에서 등장한 여성으로 인해 주인공은 1인칭 시점으로서 보는 내가 아닌 다른 나를 현실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기억에는 없지만 그 여성이 본 주인공은 3년 전 물가에서 지독한 짓 고약한 짓을 한 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이 여성을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분명 주인공이 그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를 쏘아붙였습니다.
아무 변명 없이 떠난 나아 덕분에 이 여성은 그를 분명 그 사람이라고 더 붙여서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아닌 나를 그녀는 나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소설에는 작가의 말이 없지만 겉면에 하루키의 말이 쓰여 있습니다.
1인칭 단수란 세계의 한 조각을 도려낸 혼눈인데 그 단면이 늘어날수록 이 혼눈은 겹눈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격론에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고 말하죠.

이 소설의 주인공이 생각하는 혼론인 나는 바에서 만난 여성에 의해 겸 눈이 된 것이며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루키는 말합니다.
그 무슨 일은 소설에서처럼 갈등일 수도 부끄러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화해일 수도 사랑일 수도 우종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곧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임을 하르키는 말합니다.
1인칭 단수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요 바에서 거울 속의 나를 보는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인생의 회로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어버렸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여러 인생의 갈림길에서 여러 선택에 의해 빚어진 사람입니다.

그 수많은 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닌 게 되겠죠.
하지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도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소설과 같이 타인이 자신을 나무란다면 나는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나는 타인이 보는 그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 주인공의 나는 그 시선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부끄러운 줄 알라는 말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어서 여러 가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일단 작가는 단편은 가볍게 쓰는 편이라고 합니다.
장편소설이 본업이며 페이스를 조절하는 마라톤에 비유하였고 단편 소설과 수필은 휴식이나 스트레칭으로 생각하며 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딱 그런 느낌이 드는 단편소설집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이곳이 수필집인지 소설집인지 구분도 잘 안 갑니다.

실제로 작가는 중국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고 수필집에서 밝힌 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하튼 저에게는 새로움을 주는 작가였으며 노르웨이의 숲을 제외한 다른 장편들은 어떨지 궁금하게 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 실려 있는 7편의 소설들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특히 크림이라는 소설은 여러 가지로 의미를 던져줬다고 생각합니다.

중심이 여러 개 있는 원이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말이죠.
듣기만 해도 머리를 쓰게 만드는 화두입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좋은 책으로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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