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과거 우리 조상들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양반 권력층의 갑질에 유린당한 촉박한 민중들의 삶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의 갑질은 21세기 한국에만 있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개돼지처럼 천대와 차별 속에 살아야 했던 조선 민중들의 쓰리고 아픈 삶을 이야기로 만납니다.
그러면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들만 83명 둔 소금장수 정력가
전라도 임피에 김생이라는 공인이 살고 있었다.
김생은 향교에서 아전 노릇을 했는데 풍채가 좋고 기운이 장사였다.
성년이 되자 혼례를 하여 부인과 살았는데 정력이 왕성하여 나이가 30이 되기 전에 아들을 10여 명이나 낳았다.
맛이 좋은 거야 씨가 좋은 거야 김생이 왕성하게 생식 능력을 과시하자 동료들이 웃으면서 희롱했다.
씨도 좋고 맛도 좋지 김생은 천연스럽게 받아넘겼다.
그러나 자식을 많이 낳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자식을 낳으면 먹이고 입혀야 했기 때문이다.
김생은 아전 노릇으로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가 어려워지자 한숨을 쉬면서 고민을 하다가 보부상을 하기로 했다.
장사하는 것이 좋은데 여자가 없으니 어떻게 하지 까짓 것 어떻게 하든 되겠지 김생은 정력이 왕성하여 매일 밤 부인과 교합해야 했다.
하지만 장사를 나가면 부인이 없으므로 정력을 해결할 수가 없다.
김생은 그 문제가 가장 난제였지만 일단 장사를 하기로 했다.
김생은 마을마다 고을마다 다니면서 여자들과 정을 계속 주고받았다.
김생이 여자를 후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여자 혼자 있는 집을 골라 들어가 장사를 하는 채 하며 이런저런 말로 의중을 떠보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는 시늉을 하면 그대로 덮치고는 했다.
처음에는 반항하는 시늉을 하던 여자들 대부분이 치마끈을 풀어주고 일이 끝나면 물건을 후한 값으로 팔아주었다.
다음에 또 와 달라고 살갑게 이야기를 하는 일도 있었다.
김생과 관계를 한 여자들은 어김없이 아이를 낳았다.
김생은 아이를 낳은 여자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가능한 한 돌보았다.
김생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했는데 많은 여자들과 동침을 하여 20년이 지나자 아들만 83명이 되었다.
김생이 동침한 여자들은 대부분 과부들이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
조선의 여황 풍속 중에 책 읽어주는 남자가 있다.
여왕시인 조수삼의 전기수에 의하면 동문 밖에 사는 허름한 노인이 책도 보지 않고 입으로 패서를 읽었다.
숙향전 소대상전 심청전 등 무수한 전을 읽었는데
그 읽는 솜씨가 가이 일절이라고 할 만 했다.
그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한두 명이 모이지만 나중에는 수십 명이 둘러싸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때로는 천군만마를 질타하는 영웅의 목소리로 때로는 나라를 잃은 비분강개한 목소리로 책을 읽으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노인은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문득 책 읽기를 그치고 묵묵히 앉아 있고는 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뒷이야기를 알고 싶어 다투어 돈을 던져주었다.
문신과 무신 조선의 문화는 끼리끼리 문화다
사대부는 사대부끼리 노론은 노론끼리 소로는 소론끼리 서로 이끌며 밀어주곤 했다.
문의는 무인을 적대시하고 노론은 소론을 적대시하고 소론은 노론을 적대시했다.
무신들은 문신과 함께 양반의 신분을 갖고 있었다.
문신을 동반 무신을 서반이라고 하여 둘을 합쳐 양반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무신의 자리인 서안까지 무신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무신들은 병사와 같은 지방직을 맡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나마도 자리가 한정되어 무과에 급제해도 벼슬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의 하급 관리 아전 아전은 이서라고도 불리는데 조선시대의 하급 관리를 일컫는다 경하 전은 중앙의 하급 관리고 외화 전은 지방의 하급 관리다 경화 전은 종 7푼까지 승진할 수 있지만 외화 전은 대부분 세습한다
아전이라는 말은 지방고을의 수령인 현감 군수 등이 근무하는 정청 앞에 그들이 근무하는 이방청이나 형방 등 육방청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앙관서의 아전이 되면 지금의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들은 직업으로서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이 나라에서 녹봉을 넉넉하게 받아서 중류층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앙관서의 장이 바뀔 때 물러나는 장이 그동안 수고했다고 수백 양의 당첨전을 내놓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뇌물도 많았다.
그 바람에 아전들은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백성들을 위하여 봉사한다는 자부심으로 청렴하게 사는 아전들도 적지 않았다.
조선의 장애인 조선시대에는 큰 재능을 갖고 있어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는 천민 외에 장애인도 많았다.
참의 공은 뱃속에서부터 장림이었고 그 아들 창산군 및 그의 아들 또한 뱃속에서부터 장림이 되어 3대가 연달아 이렇게 되었으니 참으로 천도는 헤아릴 수 없다.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장림이 되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오히려 장애를 갖고 있다. 보니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조롱당했다.
그러나 그들도 생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시대 시각장애인들은 점술 독경 음악 연주 등을 생업으로 삼았다.
주된 생업은 점술이었다.
조선의 민초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의 신분을 제외하고 중인이나 평민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민초라고 했다.
민초 중에는 학문이 높고 고금에 다시 없는 예인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잡초였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눈비를 맞으면서 살았다.
그래도 역사의 곳곳에 발자취를 남겼다.
성곽이나 고궁 시골 관하도 민초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고 석공 화장 목공 단청장 등 그들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길가의 잡초 같은 인생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남루하고 보잘것없었다.
첫날을 조롱한 비운의 천재 화가 역관이자 화가 악공으로 조선 후기에 크게 명성을 떨친 이미지는 중인으로 역관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가게는 경주 임시라는 사실 외에는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이미지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다.
그는 비교적 빠르게 글을 익혔으나 학문을 해도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중인 신분이다. 대과를 볼 수 없고 잡과를 보아야 한다
잡과는 크게 율과 의과 역과로 나뉜다 율과는 율관이 되는 것이고 의과는 의원 역관은 역관이 되는데 너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으냐 저는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하고 싶습니다.
중인 신분이라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미지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천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미지는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닥치는 대로 다른 사람의 그림을 모사했다.
그는 침식을 잊을 정도로 그림에 열중했다.
신분 때문에 항상 가슴이 막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그림을 그리면서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백 장 수천 장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이미지는 그림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미지는 김정일 이전 최고의 화원으로 불렸다.
그는 평생 고고하게 살았고 중인 출신으로 위양 시인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이상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고요 이 책은 중인 이하의 신분으로 잡초처럼 살았던 사람들의 애잔하고 서러운 이야기를 사례를 들어 재미있게 엮어놓은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좋은 책으로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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