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삼국사기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들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를 기록한 정사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그 가치가 높습니다.
이 책에서는 삼국사기 중 열전을 발최 수록하였습니다.
그러면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유신 김유신은 신라 왕경 사람이다.
십이 대 조 수로왕은 가야국을 세웠고 후에 금강국이라 고쳤다.
그 자손이 계승하여
구대손 구해에 이르러 망하였다. 구에는 유신의 증조가 된다.
647년은 선도광 만년이요 진도광 원년이다.
비담과 염종은 여자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이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은 신라 선덕여왕 14년 즉 육백사십오 년에 상대등이 되어 647년 선덕여왕이 정사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고 군사를 일으켰으나 김유신에게 패해 사용되었다.
을지문덕
고구려 을지문덕은 자질이 침착하고 용감하며 지혜와 도약이 있고 겸하여 그를 지을 줄 알았다.
영양왕 23년 612년에 수나라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정벌하였다.
이게
자익귀 대장군 우문수를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귀 대장군 우중문은 낭랑도로 나와서 국운이 함께 압록강에 이르렀다 살수에 이르러 수나라 군사들이 반쯤 건넜을 때에 문덕은 군사를 내어 그 후군을 쳐서 우두니 장군 신세웅을 죽이니 이에 여러 부대가 다 무너져 걷잡을 수 없었다.
처음에 요하를 건너올 때는 군사의 수가 40만 5천이었는데 돌아가 유동성에 이른 사람은 다만 2천7백 명뿐이었다.
골품 제도 신라의 골품 제도는 성골과 진골 이라는 두 개의 골과
6두품에서 1두품에 이르는 6개의 두품을 포함해 모두 8개의 신분 계급으로 나누어졌다.
이 중에서 성골은 김씨 왕족 가운데서도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최고의 신분이었는데 진덕여왕을 끝으로 소멸되었다.
진골도 성골과 마찬가지로 왕족이었으나 원래
왕이 될 자격이 없었다고 하는데 성골이 소멸되자 태종 무열왕부터는 왕위에 올랐다.
그 뒤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모든 왕은 진골 출신이었다.
이사부 512년 아슬라주 지금이 강릉 군주가 되어 우산국
울릉도를 합치려 하였으나 그 나라 사람들이 어리석고 사나워서 위력으로 항복받기가 어려웠으므로 꾀로써 굴복시키기로 하였다.
이에 나무로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선에 나누어 실어 그 나라의 바닷가에 가서 속여 말하였다.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놓아 밟아 죽이겠다 라고 하자 그 나라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항복했다.
장보고 장보고와 정현은 모두 신라 사람이다.
장보고는 대왕을 뵙고 아래였다. 중국을 널리 돌아다녀 보니 우리나라 사람을 노비로 삼고 있었습니다.
제발 청해를 지켜 적으로 하여금 사람을 잡아 중국으로 가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청해는 신라 바닷길의 요충으로 지금은 완도라고 부른다 왕은 장보고에게 군사 1만 명을 주어 지키게 하였는데
그 후로는 해상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매매하는 자가 없어졌다.
관창 관창은 신라 장군 품밀의 아들이다.
용모가 아름답고 아담하여 소년 때에 화랑이 되었는데 남과 잘 사귀었다.
나이 16살에 능이 말을 타고 화를 잘 쏘으로 대감 모아 태종 왕에게 천거하였다.
660년에 왕이 군사를 내어 당나라 장군과 함께 치는데 관창을 부장으로 삼았다.
황산들에 이르러 양편의 군사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 품일이 관창에게 말하였다.
너는 비록 나이 어리지만 의지와 기계가 있으니 오늘은 공명을 세워 부기를 취할 때이다.
용맹이 없어 되겠느냐 관창은 예해하고 적진에 쳐들어가 싸웠으나 사로잡혔고 계백은 그의 투구를 벗겨보고는 어린것이 용맹함을 기회하여
차마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관창은 다시 적진으로 들어가 싸웠으나 다시 사로잡혔다.
계백이 사로잡아 목을 베어 말 안장에 달아 보냈다.
품 밀은 그 머리를 쥐고 소매로 피를 닦으면서 말하였다.
내 아들의 얼굴이 살아있는 것과 같구나
나랏일에 죽었으니 후회가 없으리라 삼군이 이를 보고 크게 감동하고 분발하여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진격하니 백제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계백 계백은 백제 사람이다. 벼슬이 달솔 백제 16 등 관계 중 제2의 관직에 이르렀다
의자왕 20년 660년에 당나라 고종이 소정방을 신구도 대청관으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가 신라와 함께 백제를 쳤다.
계백이 장군이 되어 장사 결사대 5천 명을 뽑아서 방어하면서 말하였다.
한 나라의 사람으로 당나라와 신라의 많은 군사를 당해내게 되었으니 나라가 보존될지 멸망할지 알 수 없다.
내 처자가 잡혀가서 노비가 될까 염려되니 살아서 욕보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통쾌하다 드디어 처자를 다 죽이고는 황산들에 이르러 삼진영을 설치하고 신라 군사를 만나 싸우려고 할 적에 군사들에게 맹세하였다.
예부터 구천은 5천 명의 군사로서 오나라
70만 군사를 처부수었으니 오늘날 마땅히 각기 분발하여 최후의 결승으로 나라의 은혜를 갚자 드디어 죽기로 싸웠으므로 한 사람이 천 사람을 당해내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신라 군사가 물러갔다.
이와 같이 서로 전진하였다가 퇴각하였다가 하기를 네 번이나 하다가 계백이 힘이 다해 죽었다.
백결 선생 신라의 백결 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는 낭산 전남 영암의 옛 이름 밑에 살았는데 집이 가난하여 옷을 10군데나 기워 메추리가 달린 것 같았으므로 이때 사람들이 그를 동리 백결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는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릎 기쁘고 성내고 슬프고 즐겁고 불평스러운 일을 모두 거문고로서 나타냈다.
어느 의 첫 달 그뭄에 이웃집에서 곡식을 찌으니 아내는 이 방아 찧는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방아를 찢는데 우리만 홀로 없어서 어떻게 이 해를 지내겠습니까 선생은 내가 그들을 위해서 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위로하겠소 이에 거문고를 타서 방아 찧는 소리를 냈는데 세상에서 이것을 전하여 이름을 대학 방아 음악이라고 했다.
궁에
궁예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 씨이다.
그의 아버지는 47대 헌안왕 의정이요 어머니는 헌안왕의 궁녀였다.
5월 5일에 외가에서 나왔는데 그때 지붕 위에 긴 무지개와 같은 흰 광채가 있어
위로 하늘까지 뻗쳐 있었다. 일관 점쟁의 관원이 왕에게 아뢰였다.
이 아이는 다논알에 낳았고 나면서 이빨이 있으며 이상한 광채가 있었으니 아마 장내에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를 기르지 말아야 합니다.
왕은 내시에게 명하여 그 집에 가서 아이를 죽이게 하였다.
사자는 아이를 포대기 속에서 빼앗아 다랑 밑으로 던져버렸는데 그 젖 어미종이 몰래 일을 봤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이 그 눈에 찔려 한 눈이 애꾸눈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를 안고 도망하여
숨어서 갖은 수고를 하여 길렀다 이상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고요 이 책은 우리나라 고대 국가의 발전상을 한눈에 읽을 수 있으며 특히 삼국 시대를 연구하는 데에 꼭 필요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 국가
삼국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좋은 책으로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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