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조선왕 시크릿 파일, 중종편] 우유부단한 이기주의자, 두 얼굴의 통치자

책돌이입니당 2023. 6.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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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시크릿 파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왕 시크릿 파일 중 중종 편을 소개합니다.
중종은 조선 제 11대 왕입니다. 성종의 둘째 아들이며,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쫓아낸 뒤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주기 초에는 문벌 세가를 누르고, 왕도 정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도학에 근거한 철인 군주정치의 염증을 느끼고, 다시 훈구파의 전횡을 용인하면서, 개혁정치의 기운은 사라지고, 내정은 각종 옥사로 혼탁해졌습니다.
중종은 우유부단한 이기주의자, 두 얼굴의 통치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안에 떠는 어머니, 무서운 형

중종은 1488년 3월 5일, 성종의 차남이자 정현왕후 소생으로, 이름은 역 진성대군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이복형 연상군은 13살로 세자에 책봉된 상태였다.
그리고 여기, 일곱 살 되던 해에 연산군은 열아홉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이후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 씨 묘를 찾아내 해묘라는 이름을 내렸다.
연산군이 생모의 존재를 알지 못하며, 자신을 친 어머니로 안다고 여겼던 역의 어머니, 자순대비 정현왕후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에 생모의 무덤을 찾아내 이름을 내리자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시어머니인 인수대비 한 씨와 시할머니인 정희왕후 윤 씨가 연산군이 생모를 내쫓은 덕분에 가장 큰 혜택을 누린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누가 봐도 정현왕후가 폐비 윤 씨를 내쫓는 일에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여겨졌다.
더구나 그녀의 집안 어른인 윤필상은 폐비 윤 씨를 내쫓는 일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머리 좋고 영악한 연산군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고, 그 때문에 그녀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연산군이 어미의 죽음에 대한 복수전을 펼칠 경우, 그 화살이 자기 아들 역에게 미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역은 그런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모 밑에서 자랐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역은 이복형 연상 군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1504년,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일으켜 생모 윤 씨에 대한 대대적인 복수전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폐비 윤 씨의 출근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던 후궁 엄 씨와 정 씨를 때려죽이고, 그 아들들도 죽였다.

그리고 직접 칼을 뽑아 자순대비를 죽이기 위해 달려갔다.
왕이 손에 장검을 들고 자순 왕대비 침전 밖에서 큰 소리로 외쳐댔다.
빨리 뜰 아래로 나오라. 이런 상황에서 시녀들은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대비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왕비 신 씨가 뒤차가 힘껏 구원하여 위태롭지 않게 되었다.

한 씨의 죽음과 관련하여 소문쇄록은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때 임금이 성을 내 엄수기와 정수기를 때려죽이니, 소의 왕후 인수대비는 병들어 자리에 누웠다가 갑자기 일어나 바로 앉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부왕의 후궁인데,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임금이 왕후의 몸을 머리로 부딪혔다.

이에 왕후는 흉악하구나 하며 자리에 눕고 말하지 아니하였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다 연산군이 왕이 된 이후 소년 역이 겪었을 두려움은 매우 컸을 것이다.
특히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이 미쳐 날뛰며 눈에 거슬리면, 왕족이든 신하든 가리지 않고 죽이던 시절에는 공포가 한층 더했을 것이다.

국조이사의 다음 이야기는 소년역이 연산군이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리며 살아갔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다.
반정하던 날, 먼저 군사를 보내 진성대군이 사저를 에워쌌다.
이것은 해칠 자가 있을 것을 염려해서 호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임금이 놀라서 자길 하려 했다.
그러자 부인 신씨가 말하였다.

군사의 말머리가 이 궁 진성대군이 사저로 향해 있으면 우리 부부가 죽는 것이 마땅하지만, 만일 말꼬리가 이 궁으로 향하고 머리가 밖으로 향해 섰다면 분명 공자를 호위하려는 뜻이오니, 알고 난 뒤에 죽어도 늦지 아니하오리다.
그러면서 소매를 붙잡고 말리며 사람을 보내어 살피고 오게 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말머리가 밖을 향해 있었다.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키던 날, 중종을 보호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내 그의 사저를 지키게 했는데, 중종은 연산군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군사들을 보낸 줄 알고 자길 하려 했다.
이는 당시 19살인 중종이 연산군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중종은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이후로 줄곧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았다.

이러한 공포심은 향후 중종의 행동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부족한 결단력 중종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어떤 왕이었을까? 이에 대해 실록은 사관의 말을 빌려 이런 평가를 하였다.
상은 인자하고 유순한 면은 남음이 있었으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비록 일할 뜻은 있었으나 일을 한 실상은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하지 않고, 어진 사람과 간사한 무리를 뒤섞어 등용하여서, 재위 40년 동안에 다스려진 때는 적었고, 혼란한 때가 많았다.
인자하고 공검한 것은 천상에서 나왔으나, 우유부단하여 아랫사람에게 이끌려 진성군을 죽여 형제간의 우애가 이지러졌고, 신비를 내치고 박빈을 죽여 부부의 정이 없어졌으며,

복성군과 당성이를 죽여 부자간의 은희가 어그러졌고, 대신을 많이 죽이고 주륙이 잇따라 군신의 은이가 야박해졌으니 애석하다.
이 실록의 평가를 보면, 중종은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부족하여, 신하와 아내,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의리와 정이 부족하여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 기록에 나오는 진성군은 중종의 이복형제로, 중종 2년인 1507년에 이과의 모반 사건 때 추대를 받았다.
하여 간성에 위배되었다가 사약을 받고 죽은 인물이다.

또 여기에 등장하는 신비는 중종의 첫 왕비였으나 폐출된 단경왕후를 지칭한다.
단경왕후는 연상군의 처남 신수 군의 딸이었는데, 반정 당시 성희안과 박원종 등에게 피살된 인물이다.
박빈은 곧 경빈 박씨를 가리킨다.

중종 22년, 세자를 저조한 이른바 작서의 변이 일어나자, 경빈과 그녀의 아들 복성군이 의심을 받고 귀양 갔다.
이후 이들은 중종 28년, 박빈 소생인 혜정, 옹주의 남편 당성이, 홍해와 함께 저주의 진범으로 혐의를 뒤집어쓰고 사사되었다.
그러나 후일 이것이 모두 기말로의 계략이라는 것이 드러나 혐의를 벗게 된다.

그리고 대신을 많이 죽이고 주륙이 잇따랐다는 것은 김유사화를 비롯한 여러 정치 사건으로 조광조와 김식을 비롯한 많은 선비가 죽거나 유배된 것을 말한다.
두 얼굴을 한 왕 중종은 38년 왕위에 있었는데, 그가 왕위에 있는 동안 조정은 몹시 혼란스러웠고, 숱한 선비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간신히 판을 쳤는데, 이 모든 것이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중종에게 우유부단한 성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정말 두 얼굴이 사나이처럼 이중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신하 모두 저분이 정말 우리 주상이 맞나 하면서 자신들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중종의 이런 행동은 그가 가장 신뢰하던 조광조와 김한로를 죽일 때 확실히 드러났는데, 우선 조광조의 죽음에 대해 당시 사과는 다음과 같이 남겨 놓았다.

대관이 조광조 무리를 누나 돼, 마치 물이 더욱 깊어가듯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일을 날마다 드러내어 사사하기에 이르렀다.
임금이 즉위한 뒤로는 대간이 사람의 죄를 논하여 혹 가혹하게 벌주려 하여도, 임금은 반드시 무난하고 평이하게 처리하여 임금의 뜻으로 죽인 자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대간도 조광조를 더 벌 주자는 청을 하지 않았는데, 문득 이런 분부 죽이라는 명령을 하였다.

전날에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고 하루에 세 번씩 배웠으니 정이 부자처럼 아주 가까울 터인데, 하루아침에 변이 일어나자 용서 없이 엄하게 다스렸고, 이제 죽인 것도 임금의 결단에서 나왔다.
조금도 가볍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도타이 사랑하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일 같다.
그렇다면 중종은 어떤 상황일 때 이런 두 얼굴이 사나이가 되는 것일까?

임금이 믿고 의지하던 자가 왕권을 노린다는 고발이 이뤄지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상대를 죽였다.
그것도 단 한 번도 재고하지 않고 냉정하고 단호하게 결단을 내렸다.
즉, 친분 여하를 떠나 왕위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냉혹하고 단호하게 돌변했다.
이런 그의 이중성은 이복형제인 진성군을 죽일 때도, 자신이 큰 아들 복성군과 총애하던 경빈 박 씨를 죽일 때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비록 그 대상이 아내나 아들 형제라고 해도 상관없이 죽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결단이 너무나 급작스레 이뤄지고, 또 결심이 서면 신하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이중성을 가지게 된 것일까?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줄곧 시달리던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방어기제가 되어 잠복해 있다가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고 왕위를 뺏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면 우유부단함이나 인자함은 사라지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고요.
일반적으로 중종은 우유부단하고 끌려다니는 나약한 군주의 인상이 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중종반정 직후 초기 때의 모습이고 신권이 지나친 비대화로부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왕권을 극단적으로 강화하려 했던 임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종은 변덕이 심했는데 타인을 신뢰하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돌변하여 바로 내다 버리는 냉혹한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조선 제11대 왕 중종에 대하여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좋은 책으로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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