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왕 시크릿 파일 태조 온건한 승부사 배신당한 아비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들의 업적이 아니라 인성과 사생활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왕들의 강인하고 포용적인 모습과는 다른 인간적이고 색다른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내용은 조선의 제1대 왕 태조 이성계 편입니다.
그러면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새 어머니와 이복형제 태조는 1335년 음력 10월 11일에 아버지 이자춘과 어머니 최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자춘은 함흥 어머니는 영웅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다.
따라서 이성계도 함경도 지역의 유력한 두 가문을 배경으로 둔 옥동자로 태어난 셈이다.
하지만 함경도는 변방이라 비록 그곳에서는 이름난 가문이라고 해도 고려 귀족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위로 누나와 형이 있었다.
누나 정화 공주는 동복이었지만 다섯 살 우리 형 이원계는 이복이었다.
이복형 원계의 어머니는 이씨로 이름은 내 은장이었다.
실록은 원계의 어머니 이 씨를 이자춘 여종 출신 첩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자춘이 15세의 나이로 이혼계를 얻은 것으로 보아 내 은장은 첩이 아니라 첫 부인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성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이자춘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던 셈이다.
그때 이자춘의 나이는 21살이었다. 그리고 이자춘은 4년쯤 뒤에 또 한 명의 부인을 얻었다.
이렇듯 이성계는 유년 시절에 세 명의 어머니 아래서 두 명의 이복형제와 함께 자랐다.
제주를 알아본 서모순에 자라다 생모가 일찍 죽고 자신의 집 노비 출신인 서모 쓰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가련한 소년 그가 바로 이성계였다.
아무리 귀한 집안의 자식이라 해도 엄마 없는 아이는 불쌍한 법이다.
비록 친누나가 있긴 했지만 그녀는 미처 성인도 되기 전인 열다섯 살에 조인벽에게 출가했고 형과 동생은 모두 배다른 형제인 상황 이런 처지로 본다면 이성계의 어린 시절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넘어 구박덩이 신세였을 법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서모 김 씨가 생모의 빈자리를 잘 채워줬다 그녀는 이성계를 친자식처럼 아꼈던 모양이다.
이성계의 구술 솜씨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모양인데 소모 김 씨는 이성계의 그 뛰어난 능력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게 했다.
뛰어남이 지나치면 시기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서모 김 씨는 혹여 이성계를 시기하는 사람이 생길까 봐 함부로 실력을 드러내지 말라고 조심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진정 아끼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행할 수 없는 가르침이다.
타고난 담력과 빼어난 활솜씨
부하들이 이성계를 믿고 따른 것은 단순히 그의 포용력에 힘입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성계의 포용력 뒤에는 이를 뒷받침해 주는 또 다른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이성계의 타고난 힘과 용맹이었다.
이성계는 힘이 장사였고 담력도 매우 뛰어났다 동각 잡기에는 다음 이야기가 전한다
함흥에서 큰 소가 서로 싸우는데 여러 사람이 소싸움을 말리려고 옷을 벗어던지고 혹여 불을 붙여 던졌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태조가 두 손으로 두 손을 나누어 붓더니 소가 싸우지 못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담력이 좋은 장수도 용병술과 무술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 오히려 지나친 담력이 만용이 되어 패배하기 쉽다
이성계는 용병술이 탁월했는데 그 용동술이 가장 중요한 하나는 항상 자신이 선봉에 서서 싸운다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어떤 싸움에서도 뒤에서 부하들을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
항상 자신이 선봉에 섰고 선봉으로 진격하면 반드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성계의 승리 비결 중 하나는 그의 뛰어난 궁술 실력이었다.
이성계는 어릴 때부터 신규에 가까운 궁술 실력을 보여주었다.
위아도 회군의 인연 끊은 장남 이성계는 전쟁 영웅이라는 명성에 힘입어 중앙 정계로 진출한 후 1388년에는 요동 정벌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요동 정벌에 반대한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형을 축출하고 우왕을 폐위시킨다 이후 이성계는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여 세력을 확대 역성혁명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그런데 이 일과 관련하여 이성계 집안 내부에서 심한 갈등이 벌어진다.
이성기의 장남 방우가 위화도 회군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아버지를 성토했다.
방훈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자 벼슬을 버리고 철원의 보개산으로 은거하여 집안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이성계는 요동 정벌이 현실성 없는 망상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그 명령을 내린 상관 처형과 우왕을 제거하는 것이 대의에 맞는 일이라고 보았다.
반면 방훈은 왕명을 받고 적을 치기 위해 떠난 장수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거꾸로 창을 돌려 섬기던 왕을 공격하는 것은 반역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그 반역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견딜 수 없어 아예 가족과 함께 속세를 버리고 은거해 버렸다.
자식 잃은 아비의 눈물 태조는 천삼백구십이 년 7월에 왕위에 올라 천삼백구십팔 년 9월까지 6년 이 개월 동안 왕위에 있다가
둘째 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내주고 물러났다 왕위에서 물러나기 전 그는 수일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깨어나 의식을 회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경천동지 할 일이 벌어졌음을 알았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던 아들 방원이 반란을 일으켜 막내아들 세자 방석과
방석의 형 방번을 죽이고 사위인 이제까지 죽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방원이 손에 있었고 늙고 병든 태조에게는 방원을 상대할 힘이 없었다.
그의 슬픔은 두 아들의 죽음에 한정된 게 아니었다.
방범과 방석의 누나인 경순공주 또한 불쌍하기는 매 한 가지였다.
경순공주는 이방원에게 남편 이재를 잃고 과부로 살고 있었다.
태조는 1399년 9월 1일에 경순 공주를 만나 여승이 되게 했다.
남편 잃은 딸이 속세의 인연을 끊고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경순공주가 머리를 깎자
태조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복 오라비에게 남편을 잃고 마지못해 비구니가 되는 딸을 보니 참았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반란의 배후가 되다. 방원은 정종의 양자가 되어 세자에 책봉되었고 그해 11월에 정종의 양위로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태조는 분노하여 방원을 왕위에서 내쫓을 궁리를 하였다.
그래서 일으킨 것이 조사의 난이다.
1402년 11월에 일어난 이 난은 이성계가 2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하여 결행한 일종의 보기 전쟁이었다.
비록 조사위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실제 이 난을 연출한 장본인은 태조였다.
두 동생과 매제를 죽이고 동복형마저 유배 보낸 이방원에 대한 복수극이었다.
하지만 조사 이후 나는 실패로 끝났다
거사 초반에는 함경도와 평안도를 장악하는 등 군세를 떨쳤지만 시간이 흐르자 결국 자멸하여 무너지고 말았다.
비록 조사의 나는 실패했지만 방원에 대한 태조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기회만 생기면 어떤 방법으로든 방원을 죽이려 했다.
이상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고요
조선왕을 논할 때 흔히 태조 이성계는 전장에 나가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위대한 장수이자 목숨을 걸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과감한 혁명가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 바람에 이성계가 어떤 인성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는 간과하기 쉽습니다.
사실 이성계는 아들 바보였다고 합니다.
아들 자랑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 팔불출이었다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의 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좋은 책으로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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