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조선유사] 조운흘의 신선 장난과 홍장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책돌이입니당 2023. 6.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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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사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 유사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서술한 삼국유사의 형식으로 조선시대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오늘은 조은의 신선 장난과 홍장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외에 한 편을 소개합니다.

그러면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은우의 신선 장난과 홍장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한낮이 겨워서야 아이를 불러 살인 문 열고 수풀 속 정자로 걸어 나가 돌입기 위에 앉았네.
지난밤 산속에서 비바람 모질게 불더니만 시내 가득 흐르는 물에 꽃잎 두억에 떠내려 오네.

고려 말 조선초 역사적 격동기에 고해의 삶을 산 좋은 을이 남긴 시조인데, 여기에는 신선 같은 여유로움이 담겨 있다.
실제로 그는 어려서부터 매사의 얼매이기를 싫어했으며, 커서는 권력의 흐름에 영합하지 않았다.
고려 말년에는 혼탁한 세상에서 청맹관위를 자처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조선에 들어서는 계림과 강릉 두 곳의 부윤을 지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있다 핑계하고 광주로 들어가 은거했다.
그런 좋은 을이 강릉 부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1393년, 박신이 강원도 안렴사로 강릉에 왔다가 기생 홍장을 만나 애지중지하였다.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걸 알 정도로 깊은 정을 나누었는데, 이때 조은늘이 한 번 웃음판을 버리고자 장난을 쳤다.
당시 박 씨는 30살 한창나이였지만 좋은 늘은 60살 나이여서 풍류의 멋을 앓았던 까닭이다.
박신이 인근 고울을 두루 살피고 돌아오자 조은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애석한 일이 오나 그간 홍장이 죽었습니다.

지금 뭐라 말씀하셨소? 인명은 재천이니 너무 슬퍼 마옵소서.
박 씨는 큰 충격을 받았으나 추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 눈물을 감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했던 홍장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쳐 괴로운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조은늘은 일부러 며칠을 보낸 다음에 박신을 찾아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울적한 심회를 푸시하고 경포대에서 자그마한 놀이를 벌이고자 합니다.
배려는 고맙소만 생각이 없소이다. 세상에 왜 이리 허무한 고 박 씨는 무척 쓸쓸해했지만 좋은 늘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그곳은 올해 선적 신선의 자취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
산정에는 다족 신선이 차를 다리는 부뚜막이 있어 지금도 신선 무리가 다녀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설령 선인을 보더라도 다만 바라만 봐야지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경포 호수에 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온다 하니 홍장도 내려올지 모릅니다.
박 씨는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조은우의 말에 살짝 호기심을 느껴 따라나섰다.
박 씨는 경포대 한송정에서 술잔을 앞에 놓고 멍하니 경포대를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

동석했던 기생이 분위기를 바꾸고자 박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송정에는 달리 몇 개인 줄 아옵니까? 다리 한 개이지 몇 개겠느냐? 박 씨는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기생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옵니다. 다섯 개이옵니다. 뭐라 다섯 개라고 했느냐? 예 그렇사옵니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달, 경포에 비친 달, 술잔에 비친 달, 눈에 비친 달, 이미 가슴에 떠있는 달 이렇게 다섯이옵니다.
기생이 재치 있는 말에 박 씨는 잠시 웃음을 지었으나 이내 쓸쓸함에 젖었다.
사랑스러운 홍장이 새삼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호수의 신비로운 운무 속에서 선녀를 태운 화려한 배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조울이 약간 흥분한 어조로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보십시오. 선인이 나타났습니다.
박 씨는 물끄러미 그 배를 바라보고는 가볍게 응대했다.
경치가 이러하니 선인이 나타날 만도 합니다.

그런데 박 씨는 호기심에 배안이 손녀를 자세히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리따운 자태로 너울너울 춤추고 있는 선녀는 분명 박신이 그토록 그리워한 홍장이었다.
갑자기 죽었다더니 손녀가 되었구나. 너는 선인이 되고 나는 속세에 남았으니 우리 언제 또 만나겠는가

박 씨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의 말을 내뱉으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울이 사람을 시켜 꾸민 일인데, 박신이 보기 좋게 넘어간 것이었다.
조은늘은 홍장을 가까이 오게 했고, 박 씨는 어리둥절하다가 장난임을 알고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그렇지만 죽은 줄 알았던 홍장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결국 이별로 막을 내렸다.
얼마 후 박신이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당시 사대부는 기생을 첩으로 들 수가 없어, 박 씨는 몇 개월 후 돌아온다는 언약을 남긴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그날부터 홍장은 이제나 저제나 박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홍장은 그리운 마음을 시조로 읊었다.
한송정 달 밝은 밤의 경포대 물결 잔재 유신한 백구는 오락가락하건마는 어쩌다 우리 왕소는 가고 안이 오는 고 그래도 박 씨는 오지 않았다.

홍장은 어느 날 밤 그리움에 사묻혀 박신과 추억이 있었던 호숫가 바위로 가서 마냥 그리워했다.
그때 자욱한 안개 사이로 박 신이 나타나더니 홍장을 불렀다.
환영이었지만 홍장은 잠시 이성을 잃은 나머지 반가움에 그쪽으로 달려가다가 호수에 빠져 죽었다.

이후 안개 끼고 비 오는 밤이면 호수에서 여인이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여 사람들은 홍장이 마지막에 앉았던 바위를 홍장암이라 불렀다.
세종대왕이 금지옥엽이 굶어 죽을 운명이라니 조선 초기 왕들은 자식을 많이 낳았다.
태조는 8남 5녀를 두었으며 제2대 정종은 십오만 팔려, 제3대 태종은 12남 17여, 제4대 세종은 십팔남 4녀를 두었다.

물론 왕비 한 명이 아니라 계비와 후궁이 낳은 자식을 포함해서이며, 구중궁궐에 갇힌 외로움을 사랑으로 해결한 결과였다.
일반적으로 왕의 자식은 호화로운 일생을 살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가 다른 배달은 형제자매인지라 서로 간에 견제와 갈등이 많았고, 왕족으로서 운명적 금기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탓이다.

그래서일까 세종이 정초의 어느 날 역술가로 이름난 홍계관을 불러 왕자와 공주들의 사주를 물어보았다.
과인 아들 딸이 한 자리에 있으니 수명이 길고 복이 많을지는 숨김없이 보아주게나.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홍계관은 첫째 왕자부터 차례로 보아 나가다가 다섯째 왕자 광평대군에 이르러서는 입을 떼지 않았다.
왜 말이 없는고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가? 전하, 소인이 무슨 말씀을 올려도 노여 마시고 용서하소서.
그래 알았으니 어서 말해보거라. 황공하오나 다섯째 왕자는 굶어 죽을 것 같습니다.
뭐라 그 무슨 망령된 말이냐

초야의 백성이야 흉년이 들면 그리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찌 과인의 아들이 굶어 죽겠는가 어허 세종은 내심 충격을 받았으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어넘겼다.
전하,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재미로 본 일이니 크게 마음 쓰지 않겠노라.
세종은 그만 자리를 정리했으나 은근히 걱정하였다.

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음악과 병법에도 능하여 성품이 너그럽고 총명한 광평대군을 총애했는데, 사주와 신수점을 잘 친다고 소문난 홍계관이 그리 말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 것이다.
가장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금지옥엽 왕자가 굶어 죽을 리 없지 엉뚱하게 요절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곡식을 넉넉하게 마련해 주면 그럴 리 없어.
세종은 혹시라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여 전답 오백 석을 광평대군에게 주었다.

1년 내내 먹고도 남을 땅을 주어 평생 식량을 보장해 준 것이다.
11살 때는 신자수의 딸과 혼인시켜 항상 곁에서 돌볼 사람도 일찍 구해 주었다.
그런데 광평대군이 19살 되던 1444년에 비극적인 운명이 닥쳤다.

어느 날 반찬으로 나온 생선을 먹다가 목구멍에 가시가 찔린 것이다.
밥을 먹고 물을 삼키는 등 응급조치를 했으나 가시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어이가 와서 살펴보고 장 안에 용하다는 의원이 차례로 와서 여러 처방을 내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니, 가시 하나 뽑지 못하면서 무슨 어이란 말인가 그 많은 의원들이 요만한 일을 고치지 못한단 말인가? 세종이 분노하여 의원들을 나물 했지만 누구도 광평대군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픔은 커져 광평대군은 밥은커녕 물도 마시지 못했다.

광평대군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며칠로 굶어 죽고 말았다.
광평대군은 만 20살도 넘기지 못하고 19살 어린 나이에 온갖 음식을 두고도 굶어 요절했으니 운명치 고는 가혹한 운명이었다.
이상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고요.

감사합니다. 또 다른 좋은 책으로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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