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조선왕 시크릿 파일, 연산군편] 살 떨리는 낭만주의자, 가련한 살인귀

책돌이입니당 2023. 5. 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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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시크릿 파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왕 시크릿 파일 중 연산군 편을 소개합니다.
연산군은 조선 제10대 왕으로서 많은 신진사류를 죽이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생모 윤 씨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 명을 살해했습니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이 극에 달하여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되고 연산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연산군은 살 떨리는 낭만주의자 가련한 살인기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정을 그리워하는 소년 1476년 11월 7일 왕궁에서 한 왕자가 태어났다 아이를 낳은 왕비는 스물두 살이었고 왕의 나이는 그녀보다 두 살 어린 스무 살이었다.

왕비는 후궁 시절에 첫 아들을 낳았으나 일찍 잃었고 가까스로 두 번째 아이를 잉태한 덕분에 왕비의 책봉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니 아들이었다. 왕은 첫아들을 얻은 기쁨을 담아 아이의 이름을 마음이 지극히 크다는 뜻의 융이라고 지었는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새로운 글자였다.

예부터 자식의 이름에 지나친 의미를 담지 말라고 했거늘 아비는 아들을 얻었다는 기쁨에 도취하여 그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융이 네 살 되던 해인 1479년 6월 2일 왕은 왕비를 쫓아낸다.
그녀의 생일이 6월 1일이었으니 생일밥이 채 소화되기 전에 그녀는 폐출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왕자가 일곱살 되던 1482년 8월 16일 왕은 그녀에게 사약을 내려 자진을 명령했다.
그 왕비는 나이 스물여덟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왕비 윤 씨는 죽기 전 자신이 피가 묻은 금 삼을 친정어머니 신 씨에게 전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우리 아이가 다행히 목숨이 보존되거든 이것으로써 나의 원통함을 말해주고 또 나를 거둥 하는 길 옆에 장사하여 임금의 행차를 보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왕자 융은 그런 어머니의 처참한 죽음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자랐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은 해에 세자에 책봉되어 조선의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영명한 세자

잔인한 성정 왕자융은 비교적 명민했으나 잔인한 구석이 있는 소년이었다.
연산군이 열아홉 살 때 왕위에 올랐다.
명신농의 기록에 의하면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자 부왕이 키우던 사슴 새끼를 쏘아 죽였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오산 설림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일찍이 성종이 사양 사슴 한 마리를 길렀는데 길이 잘 들어서 항상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폐주가 곁에서 성종을 모시고 있었는데 그 사슴이 와서 패주를 핥았다.
폐주가 발로 사슴을 차니 성종이 불쾌하게 여겨서 말했다.
짐승이 사람을 따르는데 어찌 그리 잔인하게 구느냐 뒤에 성종이 세상을 떠나고 폐주가 왕위에 오르자 그날 손수 그 사슴을 쏘아 죽였다.

오산 설림이 기록대로라면 어린 시절에 자신을 욕 듣게 했던 사슴을 왕이 된 날 쏘아주겠다는 것인데 명신록에서는 사슴 새끼를 쏘아 주겠다고 했다.
원래 자신을 욕 듣게 한 사슴은 이미 죽었고 성종이 좋아하던 새끼 사슴만 있었는데 그 사슴에게 화풀이를 대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만큼 연상군의 성정 속에는 잔인한 구석이 있었다.
회름과 죽음의 잔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뒤편의 비공개 묘역에는 회묘가 있다.
회묘는 성종의 개비였던 폐비 윤 씨 즉 연산군 생모의 묘다 회묘의 회는 마음에 품고 그리워한다는 의미다 연상 군이 재위 2년에 생모의 묘를 찾아 회묘라고 이름을 내린 것으로 봐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생모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무치게 그리워하다가 왕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묘지명에 붙인 것이다.
하지만 연상군은 생모 윤 씨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내망은 알지 못했다.
그에게 윤 씨의 죽음 내막을 알린 사람은 임상웅이었다.

임사홍은 성종시절 대간의 탄핵을 받아 쫓겨났기 때문에 살림 세력의 원한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연산군에게 생모의 어머니 즉 외할머니가 생존해 있음을 알렸다.
이에 연산군은 외할머니인 고령군 부인 신 씨를 만났는데 그녀는 연산군에게 패배 윤 씨의 피 묻은 적삼을 건넸다

이를 본 연산군은 이성을 잃고 광기를 드러내어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켰다.
바로 갑자사화였다. 이에 대해 국조 기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갑다는 봄에 임금은 그 어머니가 비명에 죽은 것을 분하게 여겨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신하들을 모두 대역자로 취재하여 8종까지 연자시 켰으니

폐비 사약을 가져갔던 승지 이세자의 친족도 연좌되어 화를 입었다.
또 미수연과 풍암지 파는 이보다 더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윤필상 한치영 한명회 정창손 어세겸

심회 이파 김승경 이세자 권주 이국균 성준을 시비간이라고 부르며 어머니를 패한 사건에 연루시켜 모두 극형에 처했다.
윤필상 이극균 이세자 권주 성준 등은 죽임을 당하고 그 나머지는 관을 쪼개어 송장의 목을 베고 골을 부수어 바람에 날려 보냈으며 심하게는 시체를 강물에 던지고 그 자재들을 모두 죽이고 부인은 종으로 삼았으며 사위는 먼 곳으로 귀양을 보냈다.

연자 되어 사형할 사람 중에 먼저 죽은 사람은 송장이 목을 베도록 하고 같은 성이 팔촌까지 장형을 집행하고 여러 곳으로 나누어 귀양 보냈으며 그들이 집을 헐어 못을 만들고 비석을 세워 그 죄명을 기록하였다.
피비 사건과 관련한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참수하고 죽은 사람은 관을 다시 판에 죽이는 부관참시형에 처했다.

그렇게 해서 죽어나간 사람이 100여 명이 훨씬 넘었다.
또 윤 씨 폐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후궁 엄 씨와 정 씨를 때려죽이고 할머니 인수대비는 머리로 받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렇듯 한바탕 칼춤을 추며 죽음의 잔치를 벌인 뒤 연상 군은 회묘를 회령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폐비 윤 씨에게 제언 왕후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후로 연상군은 광기가 가득 차서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죽이며 잔혹한 살상을 이어갔으니 미쳐서 날뛰었다는 표현 외에 다른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살인귀

연산군의 학정과 패악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이를 보다 못한 내관 김처선이 지원하다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초선이 지원해 분을 참지 못한 연상군은 그를 당장 하옥시켰다.
그리고 우선 장 백대를 때리고 궁 밖으로 쫓아냈다.
거의 초주검이 된 채로 궁 밖으로 내쳐진 김처선은 그로부터 수개월 동안 제대로 운신하지 못했다.
김처선은 누워있는 동안에도 연상 군의 피의 잔치는 이어졌다.

김처선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것은 이듬해 4월 1일이었다.
이날 김처선은 궁으로 향하면서 집안사람들에게 궁에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을 이기기 위해 술도 한잔 걸치고 연산군을 찾아가 독설을 쏟아냈다.
늙은 놈이 내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도 대강 통했는데 고금을 통틀어 상관과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미 죽기로 각오한 그였다. 연산군은 그 말을 듣고 화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내 화살이 김처선이 갈빗대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김처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조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죽이십시오 다만 상관께서 오랫동안 임금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김처선은 그때 이미 연상 군이 쫓겨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 말에 연상 군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미친 듯이 화를 쏘아댔다 화살을 맞고 김차선이 쓰러지자 연산군은 칼을 뽑아 그의 다리를 내리쳤다.
양쪽 다리와 팔을 모두 칼로 내리쳐 자른 뒤에 연산군이 소리쳤다.
일어나 걸으라 어명이다. 걸으라

김처선이 고통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상감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어 다닐 수 있소이까 그러자 연산군은 김처선이 혀를 자르고 직접 칼로 그의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냈다.
당시 김천서는 숨이 멎을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조신이 소문세록에 나오는데 다소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당시 연상 군의 행동 양태로 봐서 사실일 것이다.
네 이상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고요 연산군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군주입니다.
12년에 걸친 길지 않은 치세 동안 두 번의 사화를 일으키고 극도의 폭정을 자행하다가 결국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

연산군의 일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좋은 책으로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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